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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 1225-7060(Print)
ISSN : 2288-7148(Online)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Food Culture Vol.41 No.4 pp.417-430
DOI : https://doi.org/10.7318/KJFC/2026.41.4.417

Study on the Food Culture in Veritable Records of the Joseon Dynasty through Text Frequency Analysis

Mi-Hye Kim*
Department of Food and Nutrition, The Research Institute for Basic Sciences, Hoseo University
* Corresponding author: Mi-Hye Kim, Department of Food and Nutrition, Hoseo University, Hoseo ro 79-20, Asan, Chungnam Korea 31499 Tel: +82-41-540-9663 Fax: +82-41-540-5638 E-mail: Kimmihye92@hoseo.edu
July 3, 2026 July 27, 2026 July 28, 2026

Abstract


This study conducted a quantitative analysis of Joseon Dynasty food types and examined their historical evolutionary patterns over time by performing text frequency analysis on the entire articles of the Veritable Records of the Joseon Dynasty. A total of 11,160 food-related terms were extracted into different food products. Staple foods accounted for 2,597 instances, with 895 (34.5%) in the 15th century, 555 (21.4%) in the 16th century, 406 (15.6%) in the 17th century, 543 (20.9%) in the 18th century, and 198 (7.6%) in the 19th century. For soups (tang types), the records were distributed evenly throughout the entire Joseon era, with 1,212 instances (31.1%) in the 15th century, 1,020 (26.2%) in the 16th century, 847 (21.7%) in the 18th century, and 408 (10.5%) each in the 16th and 19th centuries. When considering the frequency of appearance of each food type recorded in the Annals, the proportion of favorite foods was relatively high. This is because favorite foods have the property of conveying symbolic meaning and emotional value rather than the physical function of products. Therefore, it can be said to be the largest food cultural characteristic of the Joseon Dynasty Annals that were recorded by the Joseon ruling class.



텍스트 빈도 분석을 통한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음식 문화 고찰

김미혜*
호서대학교 바이오헬스대학 식품영양학과 및 기초과학연구소

초록


    I. 서 론

    음식은 지역음식, 민족음식 등으로 지역이나 민족을 상징하는 문화 표상일 뿐만아니라, 경제적⋅문화적 전략 상품이 되고 있다(Chung 2015). 무엇을 어떻게 왜 먹느냐하는 것 등이 음식문화인데, 전 지구화 과정에서 음식문화 연구는 지구촌의 다양한 인종과 국가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새로운 코드로 떠오르고 있다. 음식이 문화를 읽는 하나의 상징적인 코드로 해석됨으로써 생활사가 기록된 텍스트에서 음식은 한 시대 문화적 특징을 살펴볼 수 있는 기호체계이다.

    조선시대는 식생활 문화의 과학성이 높아지고 그 문화 규범이 정비되어 한식이 완성되는 시기로 농서와 지리지의 간행, 각 지방의 산출 식품이 파악되었으며, 일상 식사에서 식품 구성의 원칙이 성립된 시기였다(Kim 2006). 따라서 한식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데 있어 조선시대 음식문화 연구는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JoseonWangjoSilrok (朝鮮王朝實錄)』은 사관(史官)들의 견문(見聞)한 바를 사초에 작성하려는 철저한 기록 정신을 통한 사실적 기록으로 조선시대 연구에 필수적 기초자료(Kang 2015)이며,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소중한 편년체 자료이다. 또한 식생활 변화와 발전의 연속성을 살필 수 있는 대표적인 식생활 사서(史書)이기도 하다(Kim 2022a). 실록이 왕과 양반 관료 중심의 국정 운영과 외교사 위주 기록물이라 지배층 시각 편향의 기록이라는 제한점은 있으나, 472년 역사 단절 없이 기록되어 조선시대 음식문화의 총체적 모습을 파악할 수 있고 거시적 관점의 흐름과 변화상을 알 수 있는 훌륭한 사료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JoseonWangjoSilrok (朝鮮王朝實錄)』속 음식문화에 관한 연구는 조선왕조실록 과학계랑적 분석을 통한 채소류의 통시적 고찰(Kim 2021a),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조선시대 과실류 특성 연구(Kim 2021b), 수산물 현황과 가공식품 특성 분석(Kim 2022a), 조선시대 식중독 연구(Kim 2022b), 조선시대 곡물에 관한 인식 특성 고찰(Kim 2023), 의미망 분석을 통한 조선시대 지배계층의 술 문화 연구(Kim & Kim 2023), 조선왕조실록 속 조선의 인삼에 관한 연구(Kim 2024), 조선시대 육류 물종 현황과 지배계층의 육류 인식 특성 연구(Kim 2025) 등이 있다. 선행된 연구는 주로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단일 식재료를 중심으로 식재료 물종 현황과 시대 변화에 따른 사회적 의미, 소비문화 등을 파악하였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음식류 현황과 시대적 변화 양상에 관한 고찰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식재료 분석은 당시 식품에 대한 소비 문화 지표를 보여줄뿐 이를 매개로 발현된 당대 공동체의 가치관과 철학, 사회적 질서가 투영된 문화적 실천과 사회적 맥락을 포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텍스트 분석을 통한 『JoseonWangjo Silrok (朝鮮王朝實錄)』전체 기사를 대상으로 조선시대 음식류 물종 정량적 분석과 시대에 따른 변화 양상을 체계적으로 고찰하여, 시대별 음식문화의 변천을 규명하고, 조선시대 고유의 조리 기법과 소비 규범이 지닌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종합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한식(K-Food)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전통 식문화의 계승 및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학술적 토대를 제공하고자 한다.

    II. 연구 내용 및 방법

    1. 연구 대상

    본 연구에서는 조선시대 전체를 대상으로 음식 관련 기록을 분석하기 위해 고종실록과 순종실록 부록까지 모두 조사 범주에 포함시켰다. 조선왕조실록 원본과 번역본 자료는 국사편찬위원회 웹사이트(National institude of Korean history)에서 웹 크롤링을 통해 수집하였다.

    2. 연구 내용 및 방법

    자료 분석은 Python 3.8을 이용해 해당 사이트에서 연도별 구분되어 있는 각각의 자료들을 생성한 다음 필요한 문장을 찾고 URL을 추출하여 필요한 내용의 리스트를 생성하였다. 구축한 웹크롤러는 생성된 URL을 통해 탐색하면서 관련된 정보를 데이터베이스에 추출 후 분석하였다<Figure 1>.

    웹 사이트는 모든 기록들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4개의 대분류로 먼저 나눈 뒤에 중분류로 40개, 소분류 174개로 분류되어 총 3단계의 계층구조로 분류되어 있다. 음식 관련 키워드를 추출하기 위하여 이러한 기록 분류체계 중 식재료와 관련 가능성이 높은 경제-재정-공물과 진상, 경제-농업-권농, 농업기술, 농작, 임업, 축산, 과수원예와 특용작물, 경제-재정-수산업-어업과 염업, 사회-식생활-주부식, 주류, 기호식품, 사회-풍속-풍속과 연회 카테고리 내 기사에서 관련 한자를 추출하였다. 분석 데이터셋의 신뢰성과 재현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3단계 데이터 클리닝 과정을 수행하였다. 첫째, 파이썬 내장 라이브러리인 정규 표현식(Regular Expression, re 모듈)을 활용하여 텍스트 내에 포함된 웹 문서 전용 HTML 태그 및 시스템 제어용 특수문자를 일괄 제거하였다. 둘째, 동일한 기사가 서로 다른 카테고리에 중복 적재 되었거나 크롤링 과정에서 중복 수집된 문서를 배제하기 위해, 문서별 고유 식별자(ID)의 중복 여부를 1차로 검증하고 본문 텍스트의 정밀 일치 여부를 파악하여 중복 기사를 원천 제거하였다. 셋째, 분석 대상인 원문 텍스트에서 문장부호, 괄호, 그리고 역사적 주석 표기를 전처리하여 순수한 한자 어휘 열만을 추출함으로써 데이터의 순도를 높였다.

    3. 통계분석 방법

    추출된 음식 관련 키워드는 빈도 분석을 시행하여, 전체 자료에서 시대적 특성에 따라 단어의 빈도가 어떻게 다른지 파악하고자 하였다. 수집된 빈도는 단순 기술통계를 이용하여 집계하였으며 전체 데이터 중 차지하는 비율은 백분율로 나타내었다.

    III. 결과 및 고찰

    1. 조선왕조실록 속 음식류 기록 분류 현황

    조선왕조실록에서 음식 관련 단어의 총 출현 빈도를 추출하여 분류한 표는 <Table 1>과 같다. 음식류는 크게 주식류, 부식류, 기호식품류로 분류하였으며, 관련 단어는 총 11,160건이 추출되었다. 주식류는 총 2,597건으로 밥류 1,565건(60.3%), 죽류 1,032건(39.7%)으로 전체 음식류의 23.3%를 차지하였다. 부식류는 총 5,041건으로 탕류 3,895건(77.3%), 찬류 1,146건(22.7%)으로 총 음식류의 45.1%였다. 기호식품류는 총 3,522 건으로 병과류 471건(13.4%), 음청류 3,051건(86.6%)으로 전체 음식류의 31.6%에 해당한다. 이처럼 실록에 기록된 음식류 특성은 주식류: 부식류: 기호식품류 비율이 23.3:45.1:31.6으로써 기호식품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음을 알 수 있다.

    주식류 특징으로는 밥과 죽의 비율이 약 60:40 정도로 죽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 죽의 종류와 진어(進御)하는 시각도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매우 다양하다. 조선왕조는 건국 후 유가의 성리학을 국시(國是)로 천명하고 왕권 확립과 사회, 윤리 제도를 정비하는 일의 일환으로 국상의례(國喪儀禮)를 중시하였다(Chung 2006). 죽은 영양가가 높고 소화가 잘되어 회복식으로 적합한 음식이다. 실록은 임금의 국상의례 준수 상황에 대한 기록과 일상 생활사보다는 병환 등 변고 시 기록이 많아 회복식인 죽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난 것이다.

    부식류는 탕류와 찬류의 비율로 분류하였을 때 77.3:22.7로 탕류의 비중이 매우 높음을 알 수 있다. 탕(湯)이란 원래 끓이다는 뜻인데 갱(羹, 국)과 같이 쓰이기도 하지만 국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Lee 2014). 또한 탕은 재료를 오래 푹 끓이거나 주재료에 고기가 들어간 음식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고, 갱은 채소가 주재료인 경우에 채갱(菜羹)과 같이 표시하는 경우가 많다. 실록은 국가 제례의식과 제물의 기록이 많은데 제물에서는 주로 탕(湯)이라 기록한다. 이처럼 실록의 기록은 탕(湯)이 주식과 함께 한식의 매우 비중 높은 구성요소임을 보여준다.

    기호식품류는 병과류와 음료류 비율이 13.4:86.6으로 음료류 기록 비율이 매우 높게 나타났다. 이는 음료류 중 茶(차)의 기록이 절대적으로 높은 빈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조선 왕실은 사신 다례, 문안 다례, 회강 다례, 주다례, 별다례 등 왕권의 권위, 구성원 인화, 외교적 수단으로써 다양한 다례(茶禮) 문화가 발달하였다(Lee 2019). 차(茶)의 높은 기록 빈도는 실록이 왕실과 사대부가 중심의 생활사 기록 유산이기 때문이다. 즉, 조선의 왕실과 사대부가에서 차문화가 발달하였음을 확인 할 수 있다.

    2. 실록의 주식류 음식문화 고찰

    실록에 기록된 주식류의 출현 빈도를 시대적 흐름에 따라 <Table 2>와 같이 정리하였다. 밥류에는 飯(반), 水飯(수반), 米𥸴食(미면식, 싸래기밥) 등이 기록되었고, 죽류에는 粥(죽), 酪粥(낙죽), 駝駱(타락), 漿水(장수), 饘粥(전죽, 된죽), 將粥水(장죽수), 豆湯(두탕) 등이 있다.

    주식류 출현 빈도는 총 2,597건으로 15세기 895건(34.5%), 16세기 555건(21.4%), 17세기 406건(15.6%), 18세기 543건(20.9%), 19세기 198건(7.6%) 등이었다. 조선시대 세기별 곡류군 출현 빈도 변화는 기록문화가 발달했던 15세기 기록을 제외하면 18세기와 17세기 곡류 기록 빈도가 높았고, 16세기 기록 빈도가 낮은 것(Kim 2023)에 비해, 곡류 대표 음식인 밥과 죽은 15세기 기록을 제외하면, 16세기가 21.4%로 높은 출현 빈도를 나타냈다. 16세기 출현 빈도가 가장 높은 음식은 바로 우유로 만든 타락죽(酪粥, 駝駱)이다. 타락죽은 대표적 식치(食治) 음식으로 존중, 경로, 충효를 상징하며 조선 왕실은 안정적으로 타락우를 공급 받기 위해, 사복시 타락장에서 타락죽을 전문적으로 제조하였다(Lee 2023). 타락죽은 17세기 이후 생산과 소비가 활발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중종실록에 따르면 이미 16세기 초에도 타락죽 소비로 인하여 농사의 근본인 백성들의 소가 여위어지는 것을 우려하는 기사가 있을 정도로 일부 상류층에서 식용이 많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중종 6년(1,511년) 1월 7일 領事成希顔曰: 外方守令 支供使命之際 皆用酪粥 民之有牛者 長立官門 及牛瘦瘠 則鄕吏賤直抑賣民受其弊 請諭觀察使禁斷 (영사 성희안이 아뢰기를 외방 수령이 사신단에게 음식을 접대할 때에, 모두 타락죽을 사용하므로 소를 가진 백성들은 오랫동안 관청 문전에 서 있게 되고, 소가 여위어지면 향리가 헐값으로 억지로 팔아 백성이 폐해를 입습니다. 관찰사에 유시하여 금하게 하소서) (National institude of Korean history).

    기록된 죽의 세부 물종명은 타락죽, 장수, 두탕 정도이다. 장수(漿水)는 곡식이 들어간 물을 발효한 음료 형태이며 장수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 처음 나온다(Kang 2024). 장수는 중국 의서 처방전에 기록되어 삼국시대부터 인식되었고, 미음보다 묽은 숭늉 형태의 죽 또는 장을 탄 장즙(醬汁) 형태 음료로 분류되기도 한다. 실록 기록에 등장한 장수는 음료인 기호식품이기보다는 죽을 섭취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병약한 상태에서 복용하는 죽보다 묽은 형태의 맑은 유동식 죽으로 해석할 수 있다.

    태종 9년(1,409년) 10월 1일 茂卽復來 予曰: 君病亟矣 何遽來乎 茂曰: 飮漿水卽愈 (이무가 곧 다시 왔기에 내가 말하기를, 그대의 병이 급한데 왜 갑자기 왔는가 하니, 이무가 말하기를 장수를 마셨더니 곧 나았다고하였다) (National institude of Korean history).

    실록에는 여러 날 굶어 병약해진 기민들에게 장죽수(죽 국물)를 먹여야 한다는 식이요법 지침이 있다. 이는 위장에 부담을 주지 않는 수준에서 수분과 미네랄을 공급하기 위함이다.

    세종 27년(1,445년) 2월 3일 以軍器副正權蹲爲京畿飢民賑濟敬差官 仍授事目: 一 累日絶食 疲困飢民 飮漿水則卽死 先將粥水 待冷徐徐投下 漸致充飢 然後給食(군기 부정 권준으로 경기도 기민 진제의 경차관을 삼고, 인해 시행할 업무 목록을 내려 주었다. 하나, 여러 날 굶어서 지쳐서 쓰러진 기민은 좁쌀죽을 먹이면 즉시 죽는 법이니, 먼저 흰 죽물을 식혀 가지고 서서히 삼켜서 점차 주린 배를 축인 뒤에 먹을 것을 줄 것이다) (National institude of Korean history).

    죽의 또 다른 세부 물종은 두탕(豆湯)이다. 『GukjoOryeui (國朝五禮儀)』에 의하면 “상례(喪禮) 때 밥을 먹을 수 없으니 죽을 먹는데, 죽을 묽게 하여 탕이라고도 한다. 음료로 볼 수도 있다”고하였다(Warded Encyclopedia of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문종 2년(1,452년) 5월 5일 內醫全循義自內出曰: 上瘇處痛苦至夕稍歇 濃汁流出 進豆湯 上曰: 稍知飮食之味 群臣皆喜 (내의 전순의가 내전에서 나오면서 말하기를, 임금의 종기가 난 곳이 매우 아프셨으나 저녁에 이르러 조금 덜하고 농즙이 흘러 나왔으므로 두탕을 드렸더니 임금이 기뻐하면서 말하기를 음식의 맛을 조금 알겠다 하셨다 하니 여러 신하들이 모두 기뻐하였다) (National institude of Korean history).

    두탕은 콩죽이나 팥죽으로 해석된다. 17세기(1680년경) 『Yorok (要錄)』에도 두탕이 있는데 팥(赤豆)을 삶아 곱게 가루로 찧어 음지에서 말려 사용하고 쌀을 넣어 끓인 죽을 뜻한다(Yoon 2008). 이처럼 실록은 다양한 죽의 형태, 종류, 활용법 등을 기록하고 있다.

    2. 실록의 부식류 음식문화 고찰

    1) 탕류와 갱류

    탕류의 기록은 15세기 1,212건(31.1%), 16세기 1,020건(26.2%), 18세기 847건(21.7%), 17세기와 19세기가 각각 408 건(10.5%)이다. 이처럼 탕류는 조선 전 시대에 걸쳐 고루 기록되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탕류 세부명은 湯(탕), 蔓菁湯(만청탕, 순무국), 菜羹(채갱, 채소국) 등이 있다. 湯(탕)은 약이성 식재료를 기본으로 오래도록 끓인 음식을 통칭하는 용어이며. 羹(갱)은 채소 위주로 탕보다는 짧게 끓인 국을 부르는 용어이다(Encyclopedia of Korean Folk Culture). <Table 3>

    蔓菁湯(만청탕)의 만청(蔓菁)은 순무 또는 무청을 뜻한다. 조선의 세시풍속을 잘 기록하고 있는 『Dongguksesigi (東國歲時記)』에는 정월 대보름날 말려 두었던 여러 가지 묵은 나물 중 蔓菁蘿葍(만청라복, 순무와 무나물)을 먹던 절식 풍습이 있다(Jin 2020). 그리고 4월에서 8월까지는 쓰지 않는다는 실록의 기사를 종합하면 만청탕은 순무청 시래기국 임을 알 수 있다. 무청 시래기는 보통 첫서리가 내린 후(11월 초중순)에 수확하여 말린 것이 단맛이 돌고 가장 맛이 좋다.

    중종 26년(1,531년) 8월 15일 行祭後 予假寐于齋室 夢裏 貞顯王后敎予曰: 欲嘗蔓菁湯 予惕然忽覺 卽問於薛里 答曰: 蔓菁湯自四月至八月不用 (제사를 지낸 후 내가 재실에서 어렴풋이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정현 왕후께서 나에게 만청탕을 맛보고 싶다 하시므로 내가 송구스러워 문득 깨어서 곧 설리에게 하문하니 만청탕은 4월에서 8월까지는 쓰지 않는다고하였다) (National institude of Korean history).

    菜羹(채갱)은 채소국으로 번역되지만 나물과 국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실록에는 疏食菜羹(소식채갱, 거친 식사)으로 주로 소박하고 청빈한 생활이나 검소한 음식상을 비유할 때 사용하였다. 조선은 유교적 이념을 바탕으로 학문을 닦고 인격을 수양하여, 내면의 지혜와 외적인 실천을 조화시키려는 선비의 나라였다. 선비정신은 곧 청빈낙도(淸貧樂道) 삶을 추구하는 것으로 검소한 생활 속에서 학문과 정신적 풍요를 즐기는 것이다(Shin 2004). 이러한 선비정신에 가장 부합한 상징적 음식이 바로 채갱(菜羹)이다.

    중종 4년(1,509년) 3월 12일 是故古之儒者 學以修身 儉以礪行 雖疏食菜羹布衣韋帶, 處之晏如也 (옛 유자는 학문을 몸 닦는 것으로 하고, 검소하기는 행실 가다듬는 것으로 하여, 비록 소식, 채갱과 포의⋅위대로써도 처신하기를 편안히 하였다)(National institude of Korean history).

    2) 찜류

    찬품 중 찜류와 두부류는 15세기 13건(35.1%), 16세기 11건(29.7%), 17, 18세기 각 5건(13.5%), 19세기 3건(8.1%) 정도 기록되었다. 세부 찬품 물명이 많지 않아 시대적 변화 양상으로 해석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기록된 물종명 위주로 고찰하고자 한다. 찜류의 기록은 蒸牛兒(증우아, 송아지찜), 熟鰒(숙복, 익힌 전복), 煎藥(전약), 豆泡(두포, 두부), 豆腐(두부) 등이 있다. 한국 음식 속의 蒸(증, 찜)은 시루에 수증기로 익히는 조리법만이 아닌 삶거나 중탕하거나 지짐의 형태까지도 포함하는 조리법이다(Lee 1999). <Table 4>

    蒸牛兒(증우아)는 연산 12년 기록에 등장한다. 연산군이 고기를 좋아하여 잔치할 때마다 백성들의 소를 빼앗아 잡아 원망이 가득하니, 사축서라는 기관을 두어 소를 길러 궁중에서 쓰는 소를 키우는 농장을 두자는 기사이다. 조선시대 찬물류의 문헌적 고찰을 한 Chung et al. (2007)의 연구를 보면 17세기 이전 찜의 재료로는 닭이 가장 많이 기록되었고 노루, 개고기, 꿩고기, 붕어 등이 있다. 농우(農牛)를 보호해야 하는 농업사회인 조선에서 송아지찜은 금기시 될 정도로 귀한 음식이었다. 증우아는 연산군 폭정을 상징적으로 기록한 음식이라 할 수 있다.

    연산 12년(1,506년) 3월 14일 下蒸牛兒于承政院 傳曰: 令司畜署 多畜牛 供上何如 此物非但犧牲 常用爲便 承旨等啓 上敎允當 (찐 송아지를 내리고 전교하기를, 사축서를 시켜 소를 많이 길러 위에 바치게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이 물건은 희생뿐만이 아니라 상용에도 편리하다 하니, 승지들이 아뢰기를 상교가 진실로 지당하옵니다)(National institude of Korean history).

    熟鰒(숙복)은 전복찜을 뜻한다. 실록에 전복류는 159건 정도 기록되었고 조개류 중에서 출현 빈도가 가장 높은 식재료였다(Kim 2022a). 이는 전복이 진상품으로 수취되었고, 제주도에서는 전세(田稅)를 대신하여 수취하였으며, 진상품뿐만 아니라 중국과의 교역품으로 철저하게 관리된 귀한 식재료였다(Lim 2021). 전복은 궁중연회식에 많이 나오는데 「Wonhaeng EulmyoJeongniUigwe (園幸乙卯整理儀軌)」 등 조선왕조 궁중 의궤 13개 문헌에서 19회의 전복찜 조리법이 기록되었다(Oh & Lee 2024).

    순조 1년(1,801년) 1월 28일 敎曰: 藥房別卜定 有匣生鰒半乾全鰒生 熟鰒白細鰕甘冬醢 鰕卵皮荻栗 沙果柚子蹲柿倭柑子 自今永勿卜定事分付 卽爲行會於各該道 (하교하기를, 약방의 별복정은 유갑 생복⋅반건 전복⋅생복⋅숙복⋅백세하⋅감동해⋅ 하란⋅피적률⋅사과⋅유자⋅준시⋅왜감자는 이제부터 영구히 복정하지 말라는 일을 분부하고 곧 각각 해도에 행회하도록 하라)(National institude of Korean history).

    煎藥(전약)은 국왕과 왕실 가족의 건강을 돌보는 내의원에서 만든 대표적인 식치 음식이다. 전약은 15세기 1건, 16세기 4건, 17세기 2건, 18세기 1건 기록되었는데 외국에서 수입한 후추와 계피, 정향 등을 대추살과, 소가죽을 끓여서 얻은 아교(젤라틴)와 섞은 후 굳혀서 먹던 보양식이었다. 전약은 고려시대부터 연회 음식에 올렸으며,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의 기록에는 “동지에 내의원에서 전약을 만들어 진상하며, 각 관청에서도 이를 만들어 나누어 갖는다”라고 하였다(Encyclopedia of Korean Folk Culture).

    명종 22년(1,567년) 1월 5일 內醫院 請以瓊玉膏生地黃煎藥以進 許之 (내의원이 경옥고⋅생지황⋅전약을 진어하기를 주청하니 윤허하였다) (National institude of Korean history).

    찜류 분류 세부 물종 중 두부류 기록 빈도가 가장 높다. 두부는 豆泡(두포), 豆腐(두부) 등이 있다. 두부는 대표적 사대부의 음식이며 사찰음식이기도 하다. 16세기 사대부 일상 음식문화를 엿볼 수 있는 『Swaemirok (瑣尾錄)』에서 두부는 56회 이상 기록되었다(Kim 2019). 조선 중기 사대부들은 대체로 사찰에 두부콩을 미리 보내거나 가지고 가서 두부를 만들게 하고 바둑을 두거나 술을 마시면서 소일하였다. 이러한 사찰에서 두부를 먹는 친목 모임을 연포회(軟泡會)라 불렀으며 연포회가 사림의 결속력을 강화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Joo 2017). 15세기 실록에는 두부가 종묘나 왕실의 제사(제향)와 궁중의 일상(공상)에 사용하기 위해 올리는 제수용품 및 공물(진상품)로 바쳐지는데, 두부를 만드는데 필수적인 응고제 간수의 비위생적 관리에 관한 기사를 기록하였다.

    문종 1년(1,451년) 2월 22일 大護軍鄭孝康上言曰: 鹽田以牛耕治 雜以便旋煮鹽 必不精潔 祭享及供上豆腐 用此水 未便 請用酸水 上謂諸承旨曰: 合豆腐用何水 或云: 用鹽之融液者 或云: 海水 未知孰是 李季甸等對曰: 用鹽之融液 俗謂艮水 (대호군 정효강이 상언하기를, 염전은 소로 갈아서 똥과 오줌을 섞어 소금을 굽기 때문에 반드시 정결하지 못할 것인데, 제향 및 공상하는 두부에 이러한 물을 쓰는 것은 적당하지 못하니, 청컨대 산수를 쓰게 하소서하였다. 임금이 여러 승지들에게 이르기를, 두부를 만드는 데 무슨 물을 쓰느냐 어떤 이는 소금의 융액을 쓴다고하고 어떤 이는 바닷물을 쓴다고 하니, 누구의 말이 옳은지 알지 못하겠다하니, 이계전 등이 대답하기를, 소금의 융액을 씁니다. 시속에서 간수라고 합니다하였다)(National institude of Korean history).

    3) 김치류

    김치류 대표적 기록은 菹(저), 鹽菜(염채), 沈菜(침채) 등이 있다. 기록 빈도는 菹(저) 79건(63.7%), 鹽菜(염채) 41건(33.1%), 沈菜(침채) 4건(3.2%) 순이었다. 세기별 기록은 16세기, 17세기에는 주로 염채 기록이 많았고, 18세기, 19세기에는 침채 기록이 등장함을 확인 할 수 있다. <Table 5>

    菹(저)는 본래 중국 고문헌에 무침, 절임, 김치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沈菜(침채)가 출현하기 이전부터 사용되었다(Kang 2017). 沈(침)은 여러 가지 채소를 소금물에 담가 저장한 후 숙성되면 먹는 여러 가지 찬(饌)을 의미하므로, 沈菜(침채)는 김치뿐만 아니라 기본 찬으로 보기도 한다.

    鹽菜(염채)는 채소를 단순히 소금에 절인 저장 채소를 뜻하며 장아찌나 짠지에 가까운 형태이다. 염채는 일상에서 즐기는 반찬 종류라기 보다는 생존을 위한 구황식, 장기적 보관이 가능한 식량의 개념에 더 가까운 용어이다. 실록에서도 전란 상황인 16세기에 염채 기록 빈도가 53.7%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중종 37년(1,542년) 3월 19일 傳于政院曰: 救荒鹽菜 亦以水淺不能運 則民之饑餓迫矣 予甚惻焉 其令該司 各別措置事 斯速磨鍊以啓 (정원에 전교하였다. 구황 염채마저도 강물의 수위가 얕기 때문에 운반하지 못한다고 하니 백성의 굶주림이 절박한 것이다. 내 마음에 측은하니 해사로 하여금 각별히 조치할 일을 속히 마련하여 아뢰게 하라) (National institude of Korean history).

    沈菜(침채)는 소금물이나 국물에 채소를 담가 익힌 발효음식을 말한다. 沈菜(침채)는 김치의 한자 표기이고, 이 한자어 표기는 중국에서 들어 온 것이 아닌 우리가 만들어낸 어휘이다(Kang 2012). 실록에서는 山芥沈菜(산갓침채)와 같이 일상에서 섭취하는 구체적인 음식명을 기록할 때 사용하였다.

    고종 7년(1,870년) 10월 15일 敎曰: 立春日朔寧等諸邑所供山芥沈菜 以大同四十餘石之豆會減云 此不足爲念 而係是民弊 特爲革罷 以紓一分民力 (하교하기를 입춘날 삭녕 등 여러 고을에서 바치는 산갓 김치를 40여 석의 대동태로 회감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크게 염려할 일은 아니나 백성들의 폐해와 관계되는만큼 특별히 혁파하여 조금이나마 백성들의 힘을 펴게 하라) (National institude of Korean history).

    4) 젓갈류

    실록에서 젓갈류 기록은 총칭하는 食醢(식해), 醢(해) 등이 있고, 구체적 세부 종류를 알 수 있는 鹿醢(녹해, 사슴젓), 兎醢(토해, 토끼젓), 雉醢(치해, 꿩젓), 年魚卵醢(연어란해), 大口魚卵醢(대구어란해), 銀口魚食醢(은구어식해), 紫蝦醢(자하해, 새우젓), 腹掌醢(복장해, 내장젓), 蟹醢(해해, 게젓) 등이 있다. 젓갈류를 총칭하는 醢(해), 食醢(식해) 표현이 전체 292건(84.4%)으로 대부분이었으며, 육고기로 만든 육장이 44건(12.7%), 물고기로 만든 어장은 10건(2.9%)이었다. 발효된 음식을 가리키는 醢(해)는 우리말 젓갈을 뜻하며 소금을 넣어 발효시킨 염장식품이다. 중국과 한국 해(醢)의 공통점은 사슴, 돼지, 토끼 등의 고기와 소금을 사용했다는 점이나 중국은 참기름, 총백, 산초, 회향과 같은 향신료를 반드시 사용하며, 우리나라는 향신료 대신 누룩과 술을 넣어 발효시킨다는 점이 다르다(Han 2010). <Table 6>

    젓갈류 기록의 시대적 변화 양상을 살펴보면 15세기 245건(70.8%), 16세기 42건(12.1%), 18세기 30건(8.7%), 17세기 21 건(6.1%), 19세기 8건(2.3%) 순으로 나타나, 15세기 젓갈류 기록이 매우 높음을 확인 할 수 있다. 이는 젓갈류가 일상식뿐만 아니라 왕실 제사다례(祭祀茶禮)의 기본 찬품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 의례 기본 찬품인 젓갈류는 조선의 기틀을 확립하고자 하는 15세기에 기록 빈도가 가장 높은 것이다.

    세종 4년(1,422년) 2월 30일 則講武所獲 宜皆薦於宗廟 今止薦於秋 據歟 鹿醢皆造於秋 此又何據歟 若以春醢薦於夏秋 秋醢薦於冬春何如 (무예를 연습하여 잡은 짐승은 마땅히 모두 종묘에 제수로 올려야 될 것인데, 지금 가을에만 제수를 올리게 되니, 이는 또한 어디에 근거한 것인가. 만약 봄에 만든 육장으로써 여름과 가을에 제수로 올리고, 가을에 만든 육장으로써 겨울과 봄에 제수로 올리는 것이 어떠한가)(National institude of Korean history).

    국가 제사 의례에 올리는 예찬(禮饌)이 익히지 않고 생것에 가까운 이유는 정확한 개념 정리는 없지만 대체로 자연에서 얻은 순수성을 강조한 의미로 조선 제사 의례의 표본으로 삼고 있는 주(周)나라 이전의 제사 문화에서 온 것을 보인다(Kim 2025). 성균관과 향교의 대성전에서 공자에게 지내는 제사의식인 문묘석전이 이루어지는데 문묘석전 예찬 중에는 동물성 발효식품으로 젓갈이 담해, 어해, 녹해, 토해 등의 4품이 올라간다(Han 2010).

    세종 6년(1,424년) 8월 17일 傳旨黃海道監司: 進獻紫蝦醢 擇極精潔者藏貯 具其數以聞 (전지하기를 황해도 감사가 진상하여 올린 붉은 새우젓에서 극히 정결한 것을 가려서 저장해 두고 그 수효를 갖추어 아뢰라하였다)

    세종 6년(1,424년) 8월 21일 傳旨慶尙 江原 咸吉道監司: 進獻年魚 大口魚卵醢 欲於九十月間進獻 須令醎淡適中 精究沈造上進 (전지하기를 경상도⋅강원도⋅함길도 감사가 진상해 올리는 연어와 대구어의 알젓은 9, 10월 간에 진상해 올리게하고자 하니, 모름지기 간이 맞게 하여 정밀히 연구하여 담가서 진상하도록 하라하였다)

    성종 7년(1,476년) 2월 22일 遣內官興陽君 申雲 齎下程詣太平館 贈兩天使 上使覽物目單子 書其末曰: 只受乾大口魚十尾乾文魚二十尾 粉藿二十注之 銀口魚食醢二十尾 (내관 흥양군 신운을 보내어 하정을 가지고 태평관으로 나아가서 두 명나라 사신에게 선사하였다. 상사가 물목 단자를 보고 그 끝에 쓰기를 다만 건대구어 10미, 건문어 20미, 분곽 20주 은구어 식해 20미만 받았다) (National institude of Korean history).

    위 기사에서와 같이 조선시대 젓갈류는 국사 제례 의식에 올리는 예찬 일뿐만 아니라 공납품이었고 임금에게 올리는 진상품이었으며, 사신에게 선사한 귀한 외교 예물이었다. 즉, 단순한 저장 식품을 넘어 유교적 의례, 외교적 교류, 그리고 일상식의 풍미를 더하는 필수적인 조미료이자 보존식품으로 사대부 및 상류사회 귀중한 선물용 식품이자 교류의 매개체였다.

    중종 23년(1,528년) 2월 8일 世子朝水剌退膳生雉食醢 說書許沆及下人六七人食之 而或嘔吐 或腹痛 或眩昏 (세자의 아침 수라의 퇴선 중 생치식해 등을 설서 허항 및 하인 6∼7인이 먹고 구토를 하기도 하고 복통을 일으키기도 하고 현기증을 일으키기도 하였습니다) (National institude of Korean history).

    食醢(식해)는 아침 수라에 올라가는 일상식이었고, 단백질의 아미노산 분해로 생성되는 깊은 감칠맛으로 식욕을 돋우는 핵심 찬이었다. 하지만, 위 사례에서처럼 식중독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1450년경에 기록된 『SanggaYorok (山家要錄)』에 생치식해(生雉食醢)가 기록되어 있다. 핏물을 제거한 꿩을 뼈째 잘라 물기를 빼고 백미밥을 지어 소금과 밀가루를 섞어 항아리에 담아 기름종이로 밀봉 후 온돌에 15일 동안 숙성시켜 만든다(Rural Development Administration ed. 2004).

    5) 포류

    실록에는 일반적으로 말린 식재료를 지칭하는 脯(포), 乾物(건물), 乾魚肉(건어육) 등의 기록과 세부 물종을 알 수 있는 肉脯(육포), 中脯(중포), 條脯(조포), 乾肉(건육), 乾獐(건장, 노루포), 乾猪(건저), 乾馬肉(건마육), 乾羊(건양), 乾魚(건어), 乾魚卵(건어란), 圓鮑(원포), 引鮑(인포), 條鮑(조포), 搥鮑(추포) 등이 있다. 포류는 484건(75.7%), 육포는 97건(15.2%), 어포는 53건(9.1%) 순으로 나타났다. 기록 시기별 변화 양상을 살펴보면 15세기 404건(63.2%), 16세기 101건(15.8%), 17세기 76건(11.9%), 18세기 56건(8.8%), 19세기 2건(0.3%) 순이었다. 이는 식해 기록과 유사한 패턴을 보이는데 포류도 식해와 마찬가지로 장기 보관이 가능한 단백질 식품이고 국가 의례에 사용되는 대표적 제수이기 때문이다. 또한 운반이 용이하고 화폐처럼 교환가치가 높은 공납품과 진상품이었으며 외교 예물인 진헌물이었다. <Table 7>

    성종 14년(1,483년) 7월 6일 進獻食物 已令諸道備進 然乾物不可熱時措辦 必待秋涼可爲也 請問何時輸來 健誤聞上敎 乃問天使歸期 (진헌할 음식물을 이미 여러 도로 하여금 장만하여서 바치게하였으나, 건물은 더울 때에 장만할 수 없으므로 서늘한 가을이 되기를 기다려야 할 것인데, 언제 날라 와야 할는지 묻게하였다)(National institude of Korean history).

    육포는 고문헌 육류 요리 중 가장 높은 빈도를 나타내고 있으며 최고급 술안주이며 접대용 음식으로 잔치 음식에서 빠질 수 없는 귀한 음식이다. 육포로 주로 사용하였던 고기는 소고기(肉脯, 條脯, 中脯), 사슴고기(鹿脯), 말고기(乾馬肉), 양고기(乾羊), 노루고기(乾獐), 꿩고기(乾雉), 돼지고기(乾猪) 등이었다(Kim 2025).

    태종 17년(1,417년) 윤5월 9일 議政府 六曹上擬議各道陳言內條件 一 地闢民稠 禽獸罕少 雖勞兵馬 不能充貢 願自今供上外各處乾獐鹿 以各官所畜猪羔代之 (의정부⋅육조에서 각도의 진언 내용에 있는 조건을 의논하여 올렸다. 땅이 개척되고 백성들은 조밀하여 금수가 드물므로 비록 병마를 수고롭게 한다 하더라도 충공할 수 없으니, 원컨대 이제부터는 공상을 제외한 각 처의 건장록은 각 고을에서 기르는 돼지와 염소로써 대치하게 하소서하였다) (National institude of Korean history).

    위 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공납 포는 건장록(사슴포)을 우선으로하였으나 일반 백성들이 수렵하여 공납하는 어려움이 있어, 집에서 기르는 가축인 돼지와 염소로 포를 만들어 수급을 대체하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육류 공급 원천이 수렵 경제에서 가축 사육 경제로의 이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육류 소비의 외연이 확대되고 대중화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3. 실록의 기호식품류 음식문화 고찰

    1) 병과류

    병과류는 <Table 8>와 같이 과자류, 떡류, 엿류로 분류할 수 있다. 과자류는 菓子(과자), 藥果(약과), 羊羹(양갱), 油蜜果(유밀과) 등이 있고, 떡류에는 餠(병), 橡葉餠(상엽병), 藇餠(서병) 등이 있고, 엿류에는 餳(당), 糖(당), 白饊飴糖(백산이당, 백산엿) 등이 기록되어 있다.

    병과류는 대표적 궁중 연회, 의례, 절식 음식으로 우리 민족의 역사와 더불어 다양하게 발달하였다. 시대적 기록 빈도를 살펴보면 15세기 249건(52.9%), 18세기 86건(18.3%), 16세기 55건(11.7%), 19세기 47건(9.9%), 17세기 34건(7.2%) 순으로 15세기 병과류 기록이 전체 과반수 이상을 차지함을 알 수 있다. 이는 15세기 국조오례의와 같은 의례 기록문화가 발달하였기 때문이다. 조선 초기 의례를 체계적으로 정비, 시행하여 안정된 집권체제를 구축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다(An 2010). 병과류는 궁중 연회, 의례뿐만 아니라 아래 기사에서와 같이 혼례 등 일반 백성들의 보편적 의례와 접대 음식이었다. 병과류의 가장 대표는 바로 유밀과(油蜜果)이다.

    세종 11년(1,429년) 2월 5일 司憲府啓: 一 婚姻之家 於迎壻之夕 設盛饌 先饋壻之從者 第三日 盛設油蜜果幾至方丈 以燕壻婦將其餕餘 送于舅姑之家 又迎壻翼日賀客 塡咽燕樂 一皆禁止 (사헌부에서 계하기를, 혼인하는 집에서 사위를 맞는 날 저녁에, 성찬을 차려서 먼저 사위를 따라온 사람들에게 대접하고, 제 3일에 이르러 유밀과 등으로 큰 상을 거의 사방 열 자 폭이나 되도록 가득하게 차려서 사위와 신부에게 주고, 그 퇴물을 거두어 싸서 시집으로 보내며, 또 사위를 맞은 이튿날에 축하객이 뜰을 메우도록 밀려 와서 잔치하고 즐기는 등의 일은 일절 금지할 것이다) (National institude of Korean history).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사치스럽고 유교 경전에 수록되지 않은 불교적 음식이라 유밀과에 비판적이었지만, 왕실 속제(俗祭)의 중요한 제찬으로 활용되면서, 국가 사전(祀典)의 제사 음식으로 정례화되었다(Kim 2023b). 유밀과는 밀가루에 참기름과 꿀을 섞어 반죽한 것을 기름에 지진 과자로서, 유과(油果), 조과(造果), 가과(假果)라고 불렸고, 중박계(中朴桂), 소박계(小朴桂), 약과(藥果), 산자(散子), 다식(茶食) 등이 있다(Lim & Park 2008).

    실록에 기록된 병과류 471건 중 312건(66.2%)은 餠(병)으로 기록된 떡이다. 떡은 궁중과 지배계층 뿐만아니라 우리 민족의 농경의례와 토속신앙을 배경으로 한 각종 의례, 절식 등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보편적 한국 음식이다. 세부 종류를 알 수 있는 떡은 橡葉餠(상엽병)과 藇餠(서병)의 기록이다.

    연산 10년(1,504년) 4월 8일 傳曰: 橡葉餠何至今不薦乎 俄而內資寺主簿崔伋持獻曰: 今年日寒 橡葉未抽 故致晩耳 (전교하기를, 상수리잎 떡을 어찌하여 지금껏 올리지 않느냐하였는데, 좀 있다가 내자시 주부 최급이 가져다 드리며 아뢰기를 금년엔 날이 차서 상수리잎이 아직 피지 않았기 때문에 늦어졌습니다하였다) (National institude of Korean history).

    橡葉餠(상엽병)은 떡갈나무나 갈참나무 새순을 넣어 찐 떡으로 함경도에서는 단오날 갈참나무잎에 떡을 쪄 먹는 절식의 풍습이 있었다고한다(Encyclopedia of Korean Culture). 조선시대 고조리서 문헌에서 상엽병을 직접적으로 찾을 수는 없지만 느티나무 새순으로 떡을 만든 유엽병(楡葉餠)이 유사한 형태라 할 수 있다. 17세기 조선 별미 음식 등 식생활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인 1611년 『Domundeajak (屠門大嚼)』에 유엽병이 등장한다. 유엽병은 느티나무 새순과 쌀가루로 만든 찐 떡으로 봄에 먹는 시식(時食)이다(Won et al. 2008). 위 실록의 기사는 1504년 4월 8일 사월 초파일에 기록한 것이다. 유엽병은 초파일에 먹는 절식(節食)이기도 하다. 「농가월령가」의 사월령에도 느티떡을 초파일의 절식으로 노래하고 있다(Encyclopedia of Korean Culture).

    실록에 기록된 또 다른 떡은 藇餠(서병)이다. 서여는 산약(山藥)이라고도 하고 산마라고도 하며 서병은 곧 마떡이다.

    세종 15년(1,433년) 4월 14일 牙山縣九十四歲老嫗進薯藇餠一盆 命饋于內庭 賜綿布二匹 酒十甁及雜物 是後旁近老人來進菜蔬 皆命饋賜物有差 (아산현에 사는 94세의 늙은 할머니가 마떡 한 동이를 올리니, 내정에서 음식을 대접하고 면포 두 필, 술 열 병 및 잡물을 하사하였다. 이 뒤에도 근방에 있는 노인들이 와서 채소를 올리자, 모두 음식을 먹이고 물건을 차등 있게 하사하게 하였다) (National institude of Korean history).

    위 기사와 비슷한 시대 어의 전순의가 편찬한 『산가요록』에 서여병에 관한 기록이 있다. 껍질 벗긴 산약을 푹 찐 후 엽전 모양으로 썰어 표면에 꿀을 바르고 잣이나 참깨를 묻혀 완성한다(山藥 熟蒸 切如錢 塗蜜 以柏子細碎 塗之 或荏 去皮暫炒塗用) (Rural Development Administration ed. 2004). 조선 왕실에서는 경사스러운 날 서여를 재료로 하여 서여병과 서여다식 등 다양한 찬품을 만들어 올렸다. 서여병은 반가 음식인 『GyuhapChongseo (閨閤叢書)』(1815)에 서여향병(薯蕷香餠)으로 기록되었다(Jung YW ed. 2008). 이를 미루어 보아 마떡은 조선시대 왕실에서부터 민가에 이르기까지 널리 애용된 떡이었음을 알 수 있다.

    2) 음료류

    음료류는 크게 음청류와 다류로 분류하였다<Table 9>. 음청류는 약이성 음료로써 蜜水(밀수, 꿀물), 蔘桂飮(삼계음), 醍醐湯(제호탕) 등이 기록되었고, 다류는 茶(차), 薑茶(강차), 松節茶(송절차), 人蔘石菖蒲茶(인삼석창포차), 蔘茶(삼차) 등이 있다. 음료류의 시대적 기록 변화 양상을 보면 19세기 1,166건(38.2%), 15세기 716건(23.5%), 16세기 492건(16.1%), 18세기 451건(14.8%), 17세기 226건(7.6%) 순이었다. 음료류 기록의 가장 특이한 점은 바로 19세기 기록이 많다는 점이다. 실록에 기록된 다른 모든 음식류는 15세기 기록 빈도가 가장 높다. 그 이유는 15세기 조선의 수준 높은 기록 문화 발달과 14세기 말 태조와 정종의 9년 재위 기록도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료류만은 19세기 기록 빈도가 가장 높은데 그 이유는 음료류가 대표적 기호식품이기 때문이다.

    기호식품이란 인체에 필요한 직접 영양소는 아니지만 맛과 향을 통한 심리적 욕구 충족을 위해 먹는 식품으로 정의할 수 있다(Encyclopedia of Koran Culture). 세계적으로 19세기 음식문화는 산업혁명 대량생산 기술 도입 등으로 식량의 양적 결핍이 어느 정도 해결되고 맛과 향을 추구하는 심미적 욕구 충족 식품이 발달하게 되는데 이러한 음식 문화사적 변화를 19세기 조선왕조실록의 음료류 출현 빈도 증가에서 우리는 찾을 수 있겠다. 또한, 19세기는 서양과 일본 등 외국의 차문화 유입이 급증하면서 우리 차 문화의 틀이 전환되는 시작의 시기이기도 하다(Chung 2020).

    실록에 기록된 식품 중 조선에서 가장 귀한 고가의 진상품이며 외교적 예물은 바로 인삼일 것이다. 궁중에서 가장 즐겨 음용 하였던 대표적 약이성 음료 역시 인삼차였다. <Table 9>와 같이 인삼차의 출현 빈도는 18세기에 가장 높음을 확인 할 수 있다. 이는 전체 인삼류의 출현 빈도와 그 궤적을 같이 한다. 실록에 기록된 인삼류 출현빈도는 18세기 1,642건(42.9%), 15세기 952건(24.9%), 19세기 610건(15.9%), 17세기 526건(13.7%), 16세기 98건(2.6%) 순으로 18세기가 가장 높았다(Kim 2024). 인삼 문화사에서 18세기는 인삼 가격의 폭등으로 가삼 재배가 활성화되면서 인삼 공급의 양적인 증가와 함께 홍삼 등 새로운 인삼가공법이 발달된 시기이다.

    영조 37년(1761년) 3월 24일 命理中建功湯 日再煎入 人蔘二錢重 粟米飮煎入 (이중건공탕을 날마다 두 번씩 달여서 들이도록 명하고 인삼 두 돈에 좁쌀을 넣어 마실 수 있도록 달여서 들이게 하였다). 순조 5년(1805년) 1월 12일 命大王大妃進御人蔘一兩重參橘飮一貼 一兩重蔘桂飮二貼煎入 (대왕대비에게 진어할 인삼 한 냥을 넣은 삼귤음 1첩, 한 냥을 넣은 삼계음 2첩을 달여서 들여오도록 명하였다). 순조 15년(1815년) 8월 12일 命惠慶宮 進服人蔘養榮湯一貼煎入 (혜경궁에 인삼양영탕 한 첩을 달여 들이도록 명했다)(National institude of Korean history).

    위 기사에서 보듯 18세기, 19세기 인삼은 왕실을 중심으로 질병 치료를 위한 탕약 형태뿐만 아니라 일상의 식치 음식이나 보양 음료 형태로 즐겨 상용하기 시작하였다. 영국의 19세기 차문화가 상류층 사치품에서 서민들의 긴요한 기호품으로 변화하며 자본주의적 상품의 상징이 된 것처럼, 19세기 조선의 인삼 문화도 희귀한 약재에서 일상의 식재료로 전환되어 음식을 통해 질병을 치료하고 예방하려는 식치(食治) 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IV. 요약 및 결론

    본 연구는 조선왕조실록 전체 기사를 대상으로 텍스트 빈도 분석을 통한 조선시대 음식류 정량적 분석과 시대에 따른 변화 양상을 고찰하고, 관련 기사들의 질적 연구를 통하여 한식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하였다. 연구 대상인 조선왕조실록은 국사편찬위원회 웹사이트에서 웹 크롤링을 통해 수집하여 의미 있는 단어에 대한 빈도 분석을 시행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추출한 음식류 관련 단어는 총 11,160건이 추출되었고 주식류, 부식류, 기호식품류로 분류하였다. 추출된 음식류의 시대적 흐름에 따른 변화 양상을 살펴보았을 때 주식류는 총 2,597건으로 15세기 895건(34.5%), 16세기 555 건(21.4%), 17세기 406건(15.6%), 18세기 543건(20.9%), 19세기 198건(7.6%)이었다. 탕류는 15세기 1,212건(31.1%), 16세기 1,020건(26.2%), 18세기 847건(21.7%), 16세기와 19세기가 각각 408건(10.5%)으로, 조선 전 시대에 걸쳐 고루 기록되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찬품 중 찜류와 두부류는 15세기 13건(35.1%), 16세기 11건(29.7%), 17, 18세기 각 5건(13.5%), 19세기 3건(8.1%) 정도 기록되었다. 김치류는 16세기, 17세기에는 주로 염채 기록이 많았고, 18세기, 19세기에는 침채 기록이 등장함을 확인 할 수 있다. 젓갈류 기록은 醢(해), 食醢(식해) 표현이 전체 292건(84.4%)으로 대부분이었으며, 육고기로 만든 육해가 44건(12.7%), 물고기로 만든 어해가 10건(2.9%)이었다. 시대적 변화 양상은 15세기 245건(70.8%), 16세기 42건(12.1%), 18세기 30건(8.7%), 17세기 21건(6.1%), 19세기 8건(2.3%) 순으로 나타나, 15세기 젓갈류 기록이 매우 높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일반 말린 식재료인 포류는 484건(75.7%), 육포는 97건(15.2%), 어포는 53건(9.1%) 순으로 나타났다. 병과류는 15세기 249건(52.9%), 18세기 86건(18.3%), 16세기 55 건(11.7%), 19세기 47건(9.9%), 17세기 34건(7.2%) 순으로 15 세기 병과류 기록이 전체 과반수 이상을 차지함을 알 수 있었다. 음료류는 19세기 1,166건(38.2%), 15세기 716건(23.5%), 16세기 492건(16.1%), 18세기 451건(14.8%), 17세기 226건(7.6%) 순으로 19세기가 매우 높게 나타났다.

    이와 같이 실록에 기록된 음식 종류별 출현 빈도를 고찰하였을 때 주식류, 부식류 대비 기호식품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이는 기호식품이 상품의 물리적 기능보다 상징적 의미와 감성적 가치를 소비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으로 조선 지배계층의 기록인 조선왕조실록 음식의 가장 큰 음식문화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음식 출현의 시대적 흐름에서는 15세기 젓갈과 포의 기록 빈도가 높은 것은 저장성이 높은 젓갈과 포가 일상식뿐만 아니라 왕실 제사 다례의 기본 찬품으로써 안정된 집권체제를 구축하려는 의례 기록 문화 발달의 상징 음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세부 음식 종류에서 죽과 탕류 그리고 인삼차류 기록이 높은 빈도를 나타낸 것을 통하여 조선시대 왕실과 사대부가 보양식 위주 식치(食治) 음식 문화를 확인 할 수 있었다. 한식의 기본 구성요소인 김치류의 기록에서 조선 초기에는 주로 鹽菜(염채)의 표현에서 후기에 沈菜(침채)로 표현하는 것을 통하여 김치의 한자 표현 방식의 변화도 확인하였다.

    본 연구는 조선 왕실 중심의 지배계층에 한정된 기록이라는 근본적 제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472여 년 전 연대기적 기록을 통한 조선시대 음식문화의 통시적 고찰이라는 측면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기록된 음식 물종을 통한 조선시대 지배계층이나 각 시대를 상징하는 문화 표상으로서 음식문화를 이해할 수 있었다. 즉, 음식을 단순한 섭취 대상이 아닌, 시대별 ‘정치적 의례(젓갈⋅포)’, ‘의학적 치유(죽⋅탕⋅인삼차)’, ‘식문화 진화의 상징(염채⋅침채)’이라는 다각도적 문화 표상으로 재해석하는 새로운 분석 틀을 제시하였다. 이는 향후 빅데이터를 활용한 역사 문헌 기반의 식문화 콘텐츠 개발 및 고문헌 텍스트 마이닝 연구에 있어 유의미한 기초 지식과 방법론적 지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 정보

    김미혜(호서대학교 바이오헬스대학 식품영양학과, 교수, 0000-0001-5581-6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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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 potential conflict of interest relevant to this article was reported.

    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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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ble

    Food Classification and Frequency of Appearance

    Changes in the frequency of staple food consumption by century

    Changes in the frequency of soup occurrences across centuries

    Changes in the frequency of steamed dish species by century

    Chronological changes in the occurrence frequency of kimchi types

    Changes in the frequency of occurrence of Jeotgal by century

    Changes in the Frequency of Occurrence of Dried Side Dishes by Century

    Changes in the frequency of traditional Korean confections by century

    Changes in the frequency of beverage appearances by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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